국가 주도 AI 모델 구축 전략이 실패하는 이유
- •세계은행(World Bank) 총재는 막대한 컴퓨팅 및 에너지 비용으로 인해 개별 국가가 독자적인 기초 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 •개발도상국은 거대 기술 기업과의 자원 경쟁 및 국제적인 칩 수출 통제 등 실질적인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 •대안으로 각 국가는 디지털 공공 인프라(DPI)를 구현하여 디지털 기술을 도약시킬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 여러 컨퍼런스에서 'AI 주권'이라는 매혹적인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모든 국가가 독자적인 기초 AI 모델을 구축해 기술적 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담론이다. 외국 기술 기업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민족주의적 서사는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세계은행 총재인 아제이 방가(Ajay Banga)는 이러한 야망이 현실적인 목표라기보다 신기루에 가깝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AI 개발은 국가가 쉽게 간과하기 어려운 물리적 제약, 즉 엄청난 컴퓨팅 자원과 방대한 전력 공급이라는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
최첨단 AI를 훈련하고 유지하려면 막대한 자본 투자와 고성능 GPU와 같은 특수 하드웨어에 대한 접근성, 그리고 지속적인 고강도 연산 부하를 견딜 수 있는 에너지망이 필수적이다. 카자흐스탄과 같은 국가들이 독자적인 슈퍼컴퓨터를 구축하려 할 때, 이들은 곧바로 국제적인 수출 통제와 공급망 의존성이라는 가혹한 현실에 부딪힌다. 세계은행이 경고하듯 기존 글로벌 기술 선도 기업과 정면으로 경쟁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경제적 격차를 더 크게 벌릴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 중소 규모 경제권에 실질적인 기회를 줄 수 있는 대안적인 경로가 존재한다. 바로 인프라 구축이 아닌 거버넌스 차원의 도약이다. 이미 시스템이 고도화된 국가들은 복잡한 레거시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데 많은 자원을 소모하지만, 새로 디지털 환경을 조성하는 국가들은 처음부터 상호 운용이 가능하고 오픈 소스이며 태생적으로 안전한 디지털 공공 인프라(DPI)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국가들은 거버넌스에 집중함으로써 자국민의 데이터가 어떻게 활용될지 규칙을 정하고, 자국 언어와 지역적 맥락을 우선시하는 AI 개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 전략을 통해 중소 규모 정부들은 거대 기술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국가 예산을 낭비하지 않고도 글로벌 AI 담론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진정한 힘은 서버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AI 시스템이 국가 내에서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규제 프레임워크를 정립하는 데 있다.
현재 다양한 지역에서 이러한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 많은 국가는 미래지향적인 국가 신원 시스템, 결제 스위치, 데이터 표준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복잡한 규제와 파편화된 디지털 아키텍처라는 제도적 부담을 피하는 길을 택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성공하는 국가는 지속 불가능한 하드웨어 독점을 쫓기보다 거버넌스의 민첩성을 우선시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이제 AI 경쟁의 핵심은 '누가 가장 많은 연산 능력을 갖췄는가'에서 '누가 가장 체계적인 규칙을 마련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